2024 연분홍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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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호 展

Hwa Jeong Kim Moo Ho

2024 Solo Exhibition

김무호도록_20240301.indd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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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2 오후 12: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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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 WED - 3.26 TU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34-1, 인사아트프라자갤러리 2층

4.1 MON - 4.10 WED

충남 천안시 동남구 태조산길245, 리각미술관 전관

김무호 展

Hwa Jeong Kim Moo Ho

2024 Solo Exhibition

김무호도록_20240301.indd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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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2 오후 12: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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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O N T E N T S

- 연분홍 연심

조정육

[경상국립대 교수, 미술평론가]

004 - 014

015 - 096

-

-

신항섭

[미술평론가]

-

-

김무호도록_20240301.indd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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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2 오후 12: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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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육

[경상국립대 교수, 미술평론가]

- 어락도

097

115

- EPILOGUE

099

신항섭

[미술평론가]

117

119

- ARTIST NOTE

- BIO

picture of fish

dancing

약력

작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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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2 오후 12: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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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홍 연심

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오랫동안 관찰하다 보면 화풍이 변하는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의 작품세계는 터닝포인트가 되는 그 지점을 중심으로 시기를 나눌 수 있다.

이를테면 피카소의 작품을 청색시대, 장미시대, 입체파시대 등으로 나누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물론 한 시기의 화풍이 다음 시기로 넘어갈 때 앞 시기와 단절될 정도로

갑자기 확 바뀌지는 않는다. 앞 시기의 화풍은 다음 시기의 화풍과 맞물려 있기

마련이고, 그러면서도 앞 시기와는 다른 새로운 화풍으로 변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럴

때 미술사가들은 그 작가의 작품이 변하게 된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화풍이 변한다는 것은 작가의 심리상태가 변했음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심리상태의 변화가 어디서 기인하는 지 내적, 외적인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사람과의 만남, 새로운 경향의 그림, 전쟁이나 천재지변을 겪는 등 외적인 원인이

발생하면 작가의 화풍은 변할 수 있다. 작가는 작품으로 자신의 심리상태를 표현하기

때문에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엄청난 경험을 하게 되면 작가의 심리는 요동친다.

결혼이나 출산, 질병이나 가까운 사람과의 이별 등의 내적 원인도 작가의 화풍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작가에게 영향을 미친 요인들을 분석하는 노력은 작가의 작품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방편이라 할 수 있다. 화가의 언어는 소리가 없는 그림이다. 그림은 언어가 다르더라도

보는 순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만국 공통어이다. 그러나 소리가 없다는 것은

자칫 오독의 결과를 낳을 수가 있다. 화가가 아무리 절실한 언어로 말을 해도 그림을

보는 사람이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전혀 다른 내용으로 전달될 수 있다는 뜻이다. 굳이

해석이 필요하지 않는 화정 김무호 화백의 작품세계에 대해 사족같은 글을 덧붙이는

이유는 이번 전시회가 그의 화력에서 터닝포인트가 되기 때문이다.

조정육

(경상국립대,『그 사람을 가졌는가』저자)

-

이번 전시회의 특징은 화정이 자신을 문인화가로만 규정했던 기존의 한계를 과감하게 탈피했다는 데

있다. 색채는 더욱 밝아졌고 화사해졌으며 따뜻해졌다. 이런 변화에 대해 그의 작품을 본 어떤 관객은

‘나이 들면 세상을 받아들이는 폭이 넓어지는 것 같다’고 평가하면서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물론 그의 기존 작품에서도 강렬한 원색과 화사함은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전 작품들에서 발견되는

색채는 어디까지나 필력을 드러내기 위해 부차적으로 선택한 재료에 불과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0

년에 제작한 초대형 <어락도>라 할 수 있다. <어락도>는 강렬한 오방색이 특징이지만 이 작품에서

드러내고자 했던 것은 색채가 아니라 일필휘지의 필력이다. 마치 서예를 하듯 거침없이 내리그은 붓질의

흔적은 오방색을 압도하고도 남을 정도로 대담하다. <어락도>에서 보여 주고자 했던 필력은 무릇 붓을

잡은 문인화가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 도달하고 싶은 세계였다. 그때 작가의 관심사는 오로지 필력에만

집중되어 있는 듯 싶었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어락도>에서 뿜어져 나오던 엄청난 에너지가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하다. 대신

언제 그런 역동적인 그림을 그렸냐는 듯 딴청을 부리며 동화(童畵)같은 그림을 선보인다. 색채는 원색이

아니라 두세 가지의 색을 섞어 차분하면서도 산뜻하다. 그 효과를 위해 작가는 화선지가 아니라 판화지를

사용했다. 화선지는 한 번의 붓질만을 허용하는 대신 판화지는 여러 차례의 수정과 보완이 가능하다.

필선은 마치 어린아이가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그린 듯 어눌해 도무지 기교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화정은

심지어 이번 전시회의 제목을 초등학생이 쓴 글씨로 꾸미고 싶다는 희망을 내비치기도 했다.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그만큼 간절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가능하다면 유년시절로 돌아가 지금까지

당연하게 생각했던 고정관념을 떠나 자신이 보고 경험했던 것만을 그리고 싶다고도 했다.

어락도 294 x 110

어락도 3600 x 1920

김무호도록_20240301.indd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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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2 오후 12: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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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오랫동안 관찰하다 보면 화풍이 변하는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의 작품세계는 터닝포인트가 되는 그 지점을 중심으로 시기를 나눌 수 있다.

이를테면 피카소의 작품을 청색시대, 장미시대, 입체파시대 등으로 나누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물론 한 시기의 화풍이 다음 시기로 넘어갈 때 앞 시기와 단절될 정도로

갑자기 확 바뀌지는 않는다. 앞 시기의 화풍은 다음 시기의 화풍과 맞물려 있기

마련이고, 그러면서도 앞 시기와는 다른 새로운 화풍으로 변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럴

때 미술사가들은 그 작가의 작품이 변하게 된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화풍이 변한다는 것은 작가의 심리상태가 변했음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심리상태의 변화가 어디서 기인하는 지 내적, 외적인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사람과의 만남, 새로운 경향의 그림, 전쟁이나 천재지변을 겪는 등 외적인 원인이

발생하면 작가의 화풍은 변할 수 있다. 작가는 작품으로 자신의 심리상태를 표현하기

때문에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엄청난 경험을 하게 되면 작가의 심리는 요동친다.

결혼이나 출산, 질병이나 가까운 사람과의 이별 등의 내적 원인도 작가의 화풍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작가에게 영향을 미친 요인들을 분석하는 노력은 작가의 작품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방편이라 할 수 있다. 화가의 언어는 소리가 없는 그림이다. 그림은 언어가 다르더라도

보는 순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만국 공통어이다. 그러나 소리가 없다는 것은

자칫 오독의 결과를 낳을 수가 있다. 화가가 아무리 절실한 언어로 말을 해도 그림을

보는 사람이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전혀 다른 내용으로 전달될 수 있다는 뜻이다. 굳이

해석이 필요하지 않는 화정 김무호 화백의 작품세계에 대해 사족같은 글을 덧붙이는

이유는 이번 전시회가 그의 화력에서 터닝포인트가 되기 때문이다.

조정육

(경상국립대,『그 사람을 가졌는가』저자)

- 일필휘지의 문인화가가 연분홍빛 채색화가로 변심하게 된 까닭은

이번 전시회의 특징은 화정이 자신을 문인화가로만 규정했던 기존의 한계를 과감하게 탈피했다는 데

있다. 색채는 더욱 밝아졌고 화사해졌으며 따뜻해졌다. 이런 변화에 대해 그의 작품을 본 어떤 관객은

‘나이 들면 세상을 받아들이는 폭이 넓어지는 것 같다’고 평가하면서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물론 그의 기존 작품에서도 강렬한 원색과 화사함은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전 작품들에서 발견되는

색채는 어디까지나 필력을 드러내기 위해 부차적으로 선택한 재료에 불과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0

년에 제작한 초대형 <어락도>라 할 수 있다. <어락도>는 강렬한 오방색이 특징이지만 이 작품에서

드러내고자 했던 것은 색채가 아니라 일필휘지의 필력이다. 마치 서예를 하듯 거침없이 내리그은 붓질의

흔적은 오방색을 압도하고도 남을 정도로 대담하다. <어락도>에서 보여 주고자 했던 필력은 무릇 붓을

잡은 문인화가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 도달하고 싶은 세계였다. 그때 작가의 관심사는 오로지 필력에만

집중되어 있는 듯 싶었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어락도>에서 뿜어져 나오던 엄청난 에너지가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하다. 대신

언제 그런 역동적인 그림을 그렸냐는 듯 딴청을 부리며 동화(童畵)같은 그림을 선보인다. 색채는 원색이

아니라 두세 가지의 색을 섞어 차분하면서도 산뜻하다. 그 효과를 위해 작가는 화선지가 아니라 판화지를

사용했다. 화선지는 한 번의 붓질만을 허용하는 대신 판화지는 여러 차례의 수정과 보완이 가능하다.

필선은 마치 어린아이가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그린 듯 어눌해 도무지 기교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화정은

심지어 이번 전시회의 제목을 초등학생이 쓴 글씨로 꾸미고 싶다는 희망을 내비치기도 했다.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그만큼 간절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가능하다면 유년시절로 돌아가 지금까지

당연하게 생각했던 고정관념을 떠나 자신이 보고 경험했던 것만을 그리고 싶다고도 했다.

어락도 294 x 110

어락도 3600 x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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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2 오후 12: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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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추억과 동심을 표현하려는 소망은 미술사에 등장한

위대한 거장들이 화업의 마지막 단계에서 진입하던 세계이다.

입체파 화가 피카소가 무려 40년에 걸쳐 도달하고자 했던

자유자재의 영역도 동심의 세계였다. 동심으로 그린 그림은

그리는 사람은 사라지고 대신 그림만 남는 것. 그것은 화가가

잘 그려야겠다는 욕심을 전부 내려놓고 오로지 마음 가는

대로 그릴 대상만을 생각했을 때 가능한 세계다. 이것은

노자가 ‘도(道)를 도라고 하면 도가 아니다’라고 했던 무위

(無爲)의 세계와도 일맥상통한다. 무위 즉 ‘하는 것이 없다’

는 것은 인위적인 기교인 사람의 흔적을 남겨놓지 않는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이다. 아무리 솜씨가 뛰어난 장인이라도

자연이 이루어놓은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세계는 따라갈

수가 없다. 사람이 만든 옷은 바느질 자국이 남기 마련인데

하늘에서 지은 옷은 그 자국이 없이 완전무결하다. 이것이

자연이다. 화정이 이번 전시회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세계가

바로 그 자연스러움이다. 화정은 천의무봉을 위해 <어락도>의

힘을 뺏다. 문인화가라는 역할을 내려놓고 대신 마음이 시키는

대로 잠시 화가의 손을 빌려주었다. 그는 정신세계가 맑아지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은 그 소재와 화풍에 따라 대략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화사한 채색의 풍속화이다. 여기에서는

여인과 소가 들녘을 배경 삼아 등장한다. 특히 여인의 등장은

화정의 이전 작품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소재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머리에 들밥을 이고 가거나, 아이를 업거나

나물을 캐고 밭일하는 아낙네가 자주 등장한다. 대표적인

예로 <동심 I>에서는 머리에 광주리를 인 여인과 나무 옆에서

대화하는 두 여인 그리고 누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울며 한가롭게 앉아 있다. 구륵(鉤勒)으로 간략하게

그린 나무에는 주먹만 한 꽃송이들이 매달려 있고, 하늘에서

꽃비가 내린 듯 꽃잎이 화면 곳곳에 휘날린다. 대상의 형태를

굵은 윤곽선으로 그리는 구륵법(鉤勒法)은 윤곽선 없이

색채만으로 형태를 그리는 몰골법(沒骨法)과 함께 동양화의

오래된 기법 중의 하나다. 그런데 <동심 I>에서는 동양화의

기법이라기보다는 어린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보는 듯하다.

오랜 세월 갈고 닦은 세련된 기교가 어린아이의 그림 같은

순수함으로 되돌아가는 순간이다.

두 번째 그림은 채색으로 그린 풍경화이다. 판화지에 채색으로 그렸다는 점에서는 첫

번째 부류와 동일하지만 인물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풍속화가 아닌 풍경화로

분류된다. 그중에서도 고목 위에 까치가 두 마리 앉은 <봄소식>은 소재와 배경이

분리되지 않을 정도로 반추상에 가깝다. 눈 내리는 겨울밤 늙은 매화나무 위에 까치가

앉아 있는 <春風園裏君先發, 月夜慇懃對美人>에서는 조선중기의 조속(趙涑)과

조지운(趙之耘) 부자가 선보였던 화조영모도의 전통이 느껴진다. 화정은 기존 문인화의

틀을 가져오되 새롭게 자신만의 색채를 물들이고 현대적으로 변용함으로써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 결과 화선지에 먹을 부려 필력과 필묵으로만 묘사하던 문인화에서는

맛볼 수 없는 서정성이 돋보인다.

화정이 그린 목가적인 풍경은 어린 시절을 농촌에서 살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농촌에서는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자연의 변화를 매 순간 경험할 수 있다. 계절마다

바뀌는 산과 들녘, 논과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람들과 공간을 함께 쓰는 소와 닭과

개와 고양이 등을 지켜보면서 자란다. 그만큼 화가에게 그림 그릴 소재를 많이 제공한

셈이다. 화정은 어렸을 때부터 익숙하게 봤던 풍경들을 아낌없이 선보였다. 판화지와

채색은 그런 풍경을 풀어내는데 가장 적절한 매재였다.

동심 I 38 x 29

봄소식 25 x 35

春風園裏君先發(춘풍원리군선발)

月夜慇懃對美人(월야은근대미인)

30 x 40

김무호도록_20240301.indd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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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2 오후 12:12:57

2024-03-02 오후 12:12:57

유년의 추억과 동심을 표현하려는 소망은 미술사에 등장한

위대한 거장들이 화업의 마지막 단계에서 진입하던 세계이다.

입체파 화가 피카소가 무려 40년에 걸쳐 도달하고자 했던

자유자재의 영역도 동심의 세계였다. 동심으로 그린 그림은

그리는 사람은 사라지고 대신 그림만 남는 것. 그것은 화가가

잘 그려야겠다는 욕심을 전부 내려놓고 오로지 마음 가는

대로 그릴 대상만을 생각했을 때 가능한 세계다. 이것은

노자가 ‘도(道)를 도라고 하면 도가 아니다’라고 했던 무위

(無爲)의 세계와도 일맥상통한다. 무위 즉 ‘하는 것이 없다’

는 것은 인위적인 기교인 사람의 흔적을 남겨놓지 않는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이다. 아무리 솜씨가 뛰어난 장인이라도

자연이 이루어놓은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세계는 따라갈

수가 없다. 사람이 만든 옷은 바느질 자국이 남기 마련인데

하늘에서 지은 옷은 그 자국이 없이 완전무결하다. 이것이

자연이다. 화정이 이번 전시회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세계가

바로 그 자연스러움이다. 화정은 천의무봉을 위해 <어락도>의

힘을 뺏다. 문인화가라는 역할을 내려놓고 대신 마음이 시키는

대로 잠시 화가의 손을 빌려주었다. 그는 정신세계가 맑아지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은 그 소재와 화풍에 따라 대략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화사한 채색의 풍속화이다. 여기에서는

여인과 소가 들녘을 배경 삼아 등장한다. 특히 여인의 등장은

화정의 이전 작품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소재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머리에 들밥을 이고 가거나, 아이를 업거나

나물을 캐고 밭일하는 아낙네가 자주 등장한다. 대표적인

예로 <동심 I>에서는 머리에 광주리를 인 여인과 나무 옆에서

대화하는 두 여인 그리고 누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울며 한가롭게 앉아 있다. 구륵(鉤勒)으로 간략하게

그린 나무에는 주먹만 한 꽃송이들이 매달려 있고, 하늘에서

꽃비가 내린 듯 꽃잎이 화면 곳곳에 휘날린다. 대상의 형태를

굵은 윤곽선으로 그리는 구륵법(鉤勒法)은 윤곽선 없이

색채만으로 형태를 그리는 몰골법(沒骨法)과 함께 동양화의

오래된 기법 중의 하나다. 그런데 <동심 I>에서는 동양화의

기법이라기보다는 어린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보는 듯하다.

오랜 세월 갈고 닦은 세련된 기교가 어린아이의 그림 같은

순수함으로 되돌아가는 순간이다.

두 번째 그림은 채색으로 그린 풍경화이다. 판화지에 채색으로 그렸다는 점에서는 첫

번째 부류와 동일하지만 인물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풍속화가 아닌 풍경화로

분류된다. 그중에서도 고목 위에 까치가 두 마리 앉은 <봄소식>은 소재와 배경이

분리되지 않을 정도로 반추상에 가깝다. 눈 내리는 겨울밤 늙은 매화나무 위에 까치가

앉아 있는 <春風園裏君先發, 月夜慇懃對美人>에서는 조선중기의 조속(趙涑)과

조지운(趙之耘) 부자가 선보였던 화조영모도의 전통이 느껴진다. 화정은 기존 문인화의

틀을 가져오되 새롭게 자신만의 색채를 물들이고 현대적으로 변용함으로써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 결과 화선지에 먹을 부려 필력과 필묵으로만 묘사하던 문인화에서는

맛볼 수 없는 서정성이 돋보인다.

화정이 그린 목가적인 풍경은 어린 시절을 농촌에서 살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농촌에서는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자연의 변화를 매 순간 경험할 수 있다. 계절마다

바뀌는 산과 들녘, 논과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람들과 공간을 함께 쓰는 소와 닭과

개와 고양이 등을 지켜보면서 자란다. 그만큼 화가에게 그림 그릴 소재를 많이 제공한

셈이다. 화정은 어렸을 때부터 익숙하게 봤던 풍경들을 아낌없이 선보였다. 판화지와

채색은 그런 풍경을 풀어내는데 가장 적절한 매재였다.

동심 I 38 x 29

봄소식 25 x 35

春風園裏君先發(춘풍원리군선발)

月夜慇懃對美人(월야은근대미인)

30 x 40

김무호도록_20240301.indd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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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2 오후 12: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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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세 번째 그림은 실험성이 돋보이는 그림이다. 대표적인 작품이 부엉이 시리즈를 들 수 있다.

부엉이 그림은 행운과 재물을 불러온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장르다. 또한 고희를 축하하는

의미로도 많이 그려졌다. 부엉이는 지금까지 화정이 여러 차례 선보인 소재이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부엉이 그림은 기존의 방식대로 먹과 필력을 강조한 형식에서부터 부엉이를 제외한 뒷배경에 채색을 칠한

홍운탁월(烘雲托月)식 기법 그리고 부엉이와 배경에 색을 칠하고 긁어내기를 반복하면서 여러 가지 색이

겹쳐지면서 드러나는 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 기법까지 다양한 실험성이 돋보인다. 이런 실험성은 <동행

Ⅱ>와 <游魚動綠荷(유어동록하)>처럼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재료를 혼합해서 쓸 때에도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특히 <游魚動綠荷(유어동록하)>는 기존의 화정 작품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는데

판화지에 그은 먹의 울림과 채색이 화선지에서와는 또 다른 효과를 드러내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화정은 기존 작품과 그 맥락을 달리하는 새로운 기법의 작품들을 이번

전시회에서 선보인다. 그가 구현한 작품세계는 문인화가라는 타이틀에 안주하지 않고 언제든 변신할

수 있다는 새로운 창작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것은 마치 박생광이란 작가가 70대 중반에 들어 불교와

무속을 주제로 한 새로운 변신으로 한국채색화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것에 비견될 수 있다.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기법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하지 않는 화정의 열정은 후배들은

물론 제자들에게도 큰 자극을 주고 귀감이 될 것이다.

동행Ⅱ 47 x 30

游魚動綠荷(유어동록하) 58 x 46

김무호도록_20240301.indd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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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2 오후 12: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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